90년대 후반이니 벌써 20년이 더 된, 고등학생 때 이야기..
시골에서 비평준화 고등학교로 유학을 가게 된 나는 모든 게 낯설었다.
고등학교 들어가는데 먼 시험이겠냐 하겠지만 시골 중학교에서 매해 2~3명 정도는
더 큰 도시, 유명 고등학교로 유학 보내는게 자랑 거리 아니 관례화 되었다고 해야 하나..
시골 촌놈이 먼저 놀란 부분은 인원수였다.
기껏해야 남녀 각각 1반, 총 80여 명이던 한 학년 인원수는 한 반에 50~60명, 12반까지 약 600~700명까지 늘어났고
그만큼 나보다 똑똑한 사람도 최소한 10배 이상은 된다는 말이었다.
자율학습이란 명목 하에 0교시, 아침 7시부터 밤 10시 30분(고 3 때는 11시 30분)까지 촌놈인 나를 가뒀다.
그렇게 공부해본 적이 없는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1학년 초반에는 열심히 야자를 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서 몰래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도 들었었고, 가끔은 잡생각으로 그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그 당시 모든 초, 중, 고교 교장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색깔, 개성이 있었는데
우리 학교 교장은 건물 사이사이에 샌드백을 걸어 놓고 소리 지르고, 그걸 치면서 스트레스를 풀라고 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신문사에서 주간하는 논술에 꽂혀서 회차별 장원이나 후기에 언급되는 순위권 학생들을
엄청 칭찬해주었다.
주기가 매주인지 매달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논술 주제가 신문지를 통해 릴리즈 되면 전국 고등학생들이 200자 원고지에 맞춤법에 맞게, 본인 논리, 논거에 맞게
글을 또박또박 써서 신문사로 보내면 그것을 심사해서 장원자의 논술은 신문에 실어주고
후기까지 풀어주는 그런 형식이었다.
매번 릴리즈 되는 논설 주제를 항상 보고 있었지만 써볼까 라고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대학은 꼭 가야만 하는가'라는 주제를 보고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고
200자 원고지에 여러 번 쓰고, 고치고를 반복해서 신문사로 보냈다.
왜 그리했는지는 기억도 없고 그 당시 다른 친구들은 신문사로 보내기 전에 국어나 문학 선생님의 최종 첨삭을
받고 보냈는데 나는 무슨 근자감으로 그딴 거 필요 없이 바로 보냈는지..
과연 결과는?
(3시간 정도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서 찾았다. 그런데 기사 내용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다)
장원은 하지 못했고 담당자가 후기 적는 글에 내가 보낸 글이 좀 아쉽다고, 내 이름이 언급돼서
며칠 있다가 교장이 수고했다, 잘했다고 연습장 몇 권 주고 내 어깨 두드려줬었다. 그리고 교장이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당신 아들 칭찬해줬던 기억이 있다.
교장이 나 격려해줬을 때는 이게 뭐지 얼떨떨했는데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날 칭찬한 부분은 엄청 뿌듯했던 기억..
그리고 난생처음 신문에 이름이 나서 그때 작성했던 논술 자료와 첨삭했던 자료는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그때 신문 기사도 같이 보관했던 거 같은데 신문 기사는 아쉽게 없다 ㅠㅠ
시간 나면 한국일보에 연락해 볼 생각..
뭐 썩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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